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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미산 마을 사람들> (by 윤태근)




"와~ 좋겠다!!!" 작년 제주도 여행 중 숙소에서 '다큐3일' 에 나오는 한 어린이집을 보면서 입에서 절로 감탄이 나왔다.

방송에서는 부모 혹은 부모가 될 사람들이 꿈꾸는 완벽한 어린이집의 원형이 아름답게 그려지고 있었는데 그 무대가

바로 성미산 마을을 배경으로 하고 있었다. 마을사람들이 합심하여 만들어낸 공동육아의 문화는 보는이들로 하여금

"아... 저런 곳에서 살아봤으면..." 하는 생각을 하기에 충분했다. 그런 놀라움과 감탄이 희미해져가던 얼마전, 우연히

서점을 어슬렁거리다 이 책 제목을 보고 문득 방송에서의 모습이 생각나 바로 책을 집어들었더랬다.


이 책 역시 성미산 마을이라는 공간을 정말 꿈결같이 그려준다. 한국의 부모라면 누구나 가질법한 아이들에 대한

걱정을 모두 해결해줄듯한 공동육아 문화, 요즘처럼 각박한 세상에 마을 사람들끼리 서로 돕고 품앗이하며 정겨운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모습, 게다가 성미산이라는 자연공간과 더불어 살면서 그 곳을 개발로부터 지키기 위한 노력

또한 게을리하지 않는 정의로운 행동까지 보이는 이 곳은 도시인이라면 누구나 꿈꾸는 유토피아일게다. 하지만

바로 이런 내용들이 목에 아주 작은 가시가 박힌 듯 어떤 불편함을 주는 것도 사실이다.


책 속 성미산 마을은 그야말로 상식에 입각하여 선량한 마음을 갖고 사는 사람들이 모여사는 듯한 인상을 준다.

특히 책 앞부분에 적힌 일화들은 정말 어린이 드라마 속에 나올법한 모범 시민들의 전형들이 등장하여 아름다운

장면들을 연출하는데, 이런 내용들이 사람들에게 '성미산 마을=유토피아' 란 인식을 강하게 심어줄 수 밖에 없다.

이를 의식한 듯 책 말미에서는 결코 성미산 마을이 유토피아가 아니며, 사람들이 이런 문화를 만들기 위하여 많은

노력을 했다고 부연을 하지만 그러기엔 앞 내용들을 너무 예쁘게 그려놔서 큰 설득력을 갖지 못한다.


성미산 마을의 순기능이나 노력을 부정하자는게 아니라, 저자가 우려하듯 사람들의 질시와 편견을 불식시키기

위해서는 마을에 대한 미화보다는 그것을 이룩한 과정을 좀 더 냉철하게 보여주어, 그런 공동체를 마련하고 싶어

하는 이들에게 어떤 지침이 되어 주는게 맞다고 본다. 마을 내에서의 갈등 과정 마저도 마치 마을구성원 모두가

이성에 입각한 토론으로 해결하는 것처럼 보여주는 것은 좀 지나치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들고. 물론 그게 다

사실에 입각했다 하더라도, 책 속 사람들이 보여주는 말과 행동은 동화 속에 나오는 등장인물처럼 현실성이

결여되어 보이는 건 어쩔 수가 없다.


본문에서 저자는 성미산 마을에 왔다가 실망하여 떠나는 사람들이 있다며 안타까워 하지만, 좋은 취지에서 쓴

이 책이 그런 이유가 될 수 있음도 생각해봐야 할 것 같다. 난 이 책에서 성미산 마을의 물리적 공간에 대해서도

머리에 그려지지 않았고, 그저 좋은 심성을 가진 사람들이 노력하여 만든 꿈같은 마을이라는 인상 밖에는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조금만 더 냉철하게, 그리고 이런 마을을 꿈꾸는 이들이 시행착오를 겪지 않도록 조금만 더

구체적으로 마을에 대해 써준다면 저자 그리고 마을 사람들의 뜻이 좀 더 잘 전달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았던 책.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도 이런 마을에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