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공간은 어디로든 떠날 수 있는 출발점이 되어주고 여행의 시간은 그간 우리가 지나온 익숙함들을
가장 눈부신 것으로 되돌려놓는다. 떠나야 돌아올 수 있다.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by 박준), 110p)
새해가 되니 다 쓴 휴가가 리필이 되고, 올해는 또 언제 휴가를 길게 내고 어디로 가볼까 즐거운 고민을 했더랬다.
정작 이런저런 궁리를 하고 나니 여전히 휴가 일수는 성에 차지 않고, 마음만큼 다양한 곳을 갈 수 없다는 현실을
깨달으며 새삼스레 시무룩해지긴 했지만... 그래도 막상 여행 날짜가 다가오면 언제 그랬냐는 듯 설레겠지.
이따금씩 낯선 곳의 사진을 보고 싶거나 여행 생각이 날 때마다 종종 'walk' 라는 사진 무크지를 산다. 한번도 가본
적이 없는 곳의 풍경을 뽀얀 빛의 필름 사진으로 볼 때의 감흥이 좋기 때문이다. 저 사람은 저곳에 갈 생각을 어떻게
하게 된걸까, 어떻게 저런 기가 막힌 장면을 사진에 담을 수 있었을까 하는 부러움은 곧 여행에 대한 갈망으로
이어지곤 한다. 나도 언젠간 다른 사람들이 두근거릴 수 있게 만드는 여행 풍경사진 한장 찍어봐야지 하는 다짐과
함께. 지금도 세상엔 많은 여행자들이 저마다의 감성을 마음속에 품고 어딘가를 터벅터벅 걷고 있으리라.
그렇게 걸으며 사진을 찍은 그들도 언젠간 일상으로 돌아가겠지. 어쩌면 그들도 생활에 지쳐 새로운 전환점을
만나고 싶어 카메라를 들고 낯선 곳을 하염없이 걸었던 것은 아닐까. 그리고 그렇게 자기만의 작품 한편을 만들고
다시 일상에서 새로운 시작을 거듭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저 위에 쓰여진 문장처럼... 떠나야 돌아올 수 있다는
사실을 그 사람들은 나보다 먼저 알고 있었던 것일지도.
올해는 좀 더 많이 걷고, 좀 더 많이 보고, 좀 더 많이 찍고, 그것들을 쓰고 인화해서 남기는 일들을 부지런히
해봐야겠다. 지나가는 순간들을 아쉬워 하는 그 바보같은 시간들을 아끼고 모아서 무언가 남길 수 있는 시간으로
재활용 할 수 있도록. 한숨만 쉰다고 시간이 속도를 늦춰주지는 않으니까.
서른 아홉... 걷기엔 아직 참 좋은 나이 아니던가.
(2018. 2.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