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우리에겐 '비무장지대' 정도로만 인식되고 있는 DMZ라는 공간이 사실은 얼마나 강렬한 적대적 공기로
가득찬 곳인지, 하지만 인간이 만들어낸 그 긴장과 경계를 걷어내었을 때 또한 얼마나 아름답고 평화로운
곳인지를 보여주었던 사진전. 저 공간을 지키기 위하여 지금 이 시간에도 추위와 졸음, 그리고 공포와 싸워가며
초소를 지키고 수백개의 계단을 걷고 있을 청년들을 생각하니 마음이 무거웠다. 온통 윤형철조망으로 채워진
사진들을 바라보며 한동안 발길을 떼지 못했던 것은, 십수년전 그 철조망 안에 살면서 피끓는 청춘이 속절없이
지나감을 한탄했던 내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었으리라.
<지뢰, 지뢰, 지뢰, 지뢰...>
손에 잡히지도 않는 이념을 핑계로 열강들의 손을 잡고, 얼마전까지 함께 살던 이들의 발목과 목숨을 날려버리기
위해 묻어두었던 저 저주받을 지뢰들이, 수십년이 지난 후에도 이렇듯 생채기로 남을 거라고 전쟁 당시의 그들은
상상이나 했을런지... 아직도 헤아릴 수 없이 많이 남아있을, 어디에 어떻게 묻혔는지 가늠할 수 없다는 저 지뢰들을
다 없애버리고 한반도 한 중간의 아름다운 자연 풍경을 감상하며 터벅터벅 걸어갈 수 있는 날이 내 생애에 언젠가
올 수 있기는 한 것일까.
류가헌에 박종우 작가님의 싸인이 남겨진 사진집을 찾으러 갔다가 너무나 우연히도 작가님을 직접 볼 수 있었음에도,
DMZ를 사진으로 남기기 위한 그 9년간의 작업이 어떤 의미였는지, 그 결과물을 보고 어떤 심정이셨는지를 여쭤보지
못한 내 용기없음이 지금도 한없이 후회가 된다. 난 내 인생의 상당한 부분을 뚝 떼어 하나의 주제에 천착하고 작품
이라 할만한 것을 남길 수 있을까. 사진집에 남겨진 이 풍경들이 먼훗날 언젠가 다시 볼 수 없는 추억의 한 장면이
될 날을 기다리며.
(2018. 1.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