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죽은 뒤 장례식을 치르지 못해, 내 삶이 장례식이 되었습니다.(99p)
누군가의 죽음으로 세상을 바꿔야 하는 시대도 비극이지만... 누군가가 결국 자의든 타의든 죽음을 맞이해야 했을 때 그 사람을
추모하지 않는 사회는 생지옥이다. 이 세상에 중요하지 않은 목숨이란 없고, 모두가 누군가의 귀한 아들이나 딸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그 사람이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지고 다른 행동을 했다고 해도, 목숨을 잃어야 하는 상황이 생긴다면 마땅히 그에 대한
애도를 표하는 것이 정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은 그게 정상이란걸 모르는 듯 하다.
「소년이 온다」 속 저 문장은 1980년 광주에서 스러져간 이들을 제대로 보내주지도 못한 사람들의 한이 어떤 것인지를
짧지만 강렬하게 보여준다. 비극과 야만의 현장에서 살아남은 자의 슬픔과 죄책감이 어떠했을지 우린 상상조차 할 수 없다.
다만 이렇게 그 당시를 회고하고 함께 아파하며, 지금이라도 그분들을 제대로 보내줄 수 있도록 애도하자는 작품들을 통해
아주 어렴풋하게나마 느끼고 유념하는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전부가 아닐까. 하지만 이런 아픈 시대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누군가는 일어나선 안될 참사와 공권력의 힘 앞에 생을 등지고 있고, 그에 대하여 사람들이 놀라울 정도로 무관심한
현실이 존재한다는 것은, 우린 아직 과거에 대한 진정한 반성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반증한다.
우린 여전히 세월호에서 유명을 달리한 사람들을 제대로 보내드리지 못했다. 내 아들딸들이 왜 죽어야 했는지를 밝히자는
부모들의 애끊는 의견은 국가 질서를 흔드는 불온세력의 난동질이라며 조롱당했으며, 희생자 중 일부는 아직도 배 안에
남아있지만 배를 인양할 움직임은 전혀 보이지 않는 상황이다. 생때같은 자식들, 가족들의 장례조차 치르지 못한 분들의
삶은 소설속 문장처럼 장례식이 되었다. 하지만 그분들뿐만 아니라 이 사회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의 삶 역시 결코
온전할 수 없을 것이다. 이번에도 우린 진정한 애도와 추모를 하지 않고 이 커다란 비극을 어물쩡 넘겼기 때문이다.
집회의 자유가 보장된 나라에서, 거리 시위를 하던 시민이 경찰이 쏜 물대포를 맞고 생사를 오가고 있는데도... 그 사람의
생환을 기도하기 보다는, 그는 과거 운동 전력이 있는 사상이 불온한 폭도였다는 식으로 몰아가는 파렴치한들이 있다.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지만, 누가 들어도 '죽어도 싸다' 로 해석되는 그들의 말을 들으며, 세상이 과연 진보하고 있는 것인가에
대하여 심각하게 회의하게 된다. 그가 과거에 운동을 한게 아니라 도둑질을 했다고 쳐도, 죽어 마땅하다는 명제는 어떤
경우에도 성립하지 않는다. 아니 성립하면 안된다. 그렇게 되면... 우리중에 죽어 마땅하지 않은 사람이 얼마나 되겠나.
난 늦게라도 세월호에서 스러진 분들에 대한 진정성 있는 추모가 이루어지길 바란다. 그래서... 그들을 떠나보내야 했던 가족과
친지들이 한없는 슬픔 속에서 조금이라도 헤어나올 수 있는 작은 길이나마 만들어 드려야 한다. 그리고 이번에 길 위에서
쓰러진 백남기씨에 대하여 우리가 장례를 치를 일이 생기지 않기를 바란다. 그는 반드시 살아 돌아와야 하며 그를 기다리는
가족의 곁으로 돌아가야 한다. 언제까지 불합리한 죽음을 모른척하고 참고 감내할 수는 없는 일이니까.
모든 생명은 귀한 것이고, 누군가의 죽음은 그 자체로 비극이며 진심어린 애도를 통해 잘 떠나보내드려야 한다는 것. 그리고...
남의 죽음을 귀하게 여기지 않는 자들은 절대 용서해서는 안된다는 것. 이게 우리가 죽음에 대처할 때 꼭 기억해야 할 자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