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이 그러니까 어쩔 수 없다' 라는 것은 법의 정신이 아니다.
법은 '이상적인 당위' 를 선언해야 한다.(391p)
법은 '이상적인 당위' 를 선언해야 한다.(391p)
법이 위와 같은 본연의 의무를 슬금슬금 피할 때 어떤 괴물이 탄생하는지를, 우리는 삼성이라는 기업을 통해 목도하고 있다.
삼성이 괴물이 된 이유가 이건희 일가의 전횡 때문인지 아니면 이를 묵인하는 사법부 때문인지는 명확이 지적할 수 없다.
그 두가지 이유가 뫼비우스의 띠처럼 이어지며 삼성이라는 유망 기업을 좀먹고 있는 탓이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를
가릴 것 없이, 닭과 달걀 모두가 문제란 뜻이다.
삼성이란 기업은 이 땅에 사는 모든이들에게 애증의 대상이다. 한국 경제를 이끌고 우리를 먹여살리는 경제적 리더라는
추앙과 더불어, 온갖 비리의 온상이며 할 수 있는 나쁜짓은 다하는 악마같은 존재라는 경멸까지를 한 몸에 받는 기업.
이는 삼성 자체가 가진 문제가 아닌, 그 기업을 주무르고 있는 한줌의 인간들과 그들을 둘러싼 가신그룹의 행태 때문임을
이 책은 적나라하게 지적한다.
'이건희는 미워하되 삼성은 미워하지 말라.' 김용철 변호사가 이 책을 통해 전하려는 메시지는 이것이 아닐까? 지금 삼성이
보여주는 지저분한 행태가 삼성 임직원들의 뜻이 아닌, 이건희 일가와 그들을 보위하려는 한줌의 가신그룹들의 머리에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삼성의 발전을 위해 피땀흘려 노력하는 기술자들보다, 이건희의 경영권 확립을 위해 범죄도 서슴지
않는 이들에게 더 많은 혜택이 돌아가는 구조를 타파하는 것이 삼성을 위하는 길임을 김용철은 거듭 강조한다. 사실 사람들이
욕해 마지않는 삼성의 행태가 모두 이건희와 연결된 것들이 아니었던가? 이들에 대한 단죄는 결코 삼성을 망하게 하는 길이
아닌, 오히려 안으로부터 썩어들어가고 있는 삼성을 갱생시키는 길임은 자명한 사실이다.
언젠가 삼성 직원들의 카드섹션을 보며 소름이 돋았던 적이 있었다. 그들은 그런 행사를 통해 삼성인으로서의 자긍심을
느낀다고 했지만, 내겐 그것이 김정일을 앞에두고 벌이는 북한 인민들의 매스게임과 별 다를바 없이 보였다. 창의적이고
신선한 발상을 해야할 이들이 가장 전근대적인 전체주의적 행사에 동원되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무 생각없이 삼성이란
조직에 충성하게 만들어 내부 견제의 움직임을 사전에 막으려는 삼성 수뇌부의 발상일 것이다. 소수 인간들의 안위를 위해
조직 구성원 대다수를 세뇌시켜야 하는 기형적인 시스템 하에서 그 조직은 얼마나 오래 갈 수 있을까?
삼성으로부터 돈을 받고 배에 기름칠하는 법관들이 삼성관련 판결 때마다 '국가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하여' 라는 말을
반복하는 한 우리 사회의 건전한 발전은 점점 요원해질게다. 법과 정의에만 신경쓰면 될 법관들이 주제넘게 경제를 걱정하며
그들이 지켜야 할 법과 정의를 능멸하는 장면을 보며 어느 누가 사법부의 독립을 지지하고, 그들의 판결을 존중할까? 법조계
뿐만 아니라 언론, 공무원 등이 삼성과 함께 화기애애한 왈츠를 추는 작금의 실태에서는 결국 삼성과 연결된 소수만의 잔치가
계속될 것이다. 그런데도 삼성의 부조리를 타파하자는 움직임에 왜 그리 많은 사람들이 눈에 쌍심지를 켜고 반대를 하는
것일까? 그들은 여전히... 삼성이 '또 하나의 가족' 이라 착각하는 것이 아닐런지.
책장은 쉴 새 없이 넘어갔지만, 읽는 내내 피곤했다. 하나의 조직이 보여줄 수 있는 모든 부정과 폐해를 다 보고 있자니 정말
머리가 무겁고 가슴이 언짢은 그런 우울한 상태가 지속되더라. 이 책이 많이 팔려 사람들이 삼성에 대한 경계의 눈빛을 좀 더
예리하게 가지게 된다 해도 지금 당장 삼성이 건전한 기업이 될 수는 없을게다. 얽혀있는 부패의 실타래가 실밥 하나 당긴다고
술술 풀리는 것은 아닐테니. 난 그냥... 앞으로 내 돈 내고 삼성 제품 안사고, 이렇게나마 이 책을 읽어야 할 당위성을 쓰는 것
정도의 역할만 할 수 밖에. 어둠의 진창 속에서 바깥 세상 빛에 눈이 멀 것을 각오하고 볕으로 나온 김용철 변호사에게 박수를
보내며... 줄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