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凝視

망가진 사나이, 허지웅


'트위터가 세상을 바꿀 것인가' 라는 다소 황당한 주제를 두고 허지웅과 고재열이 격론을 벌일 때의 허지웅은 참 멋졌다.

고재열이 가진 대책없는 허세의 맹점을 정확히 짚으며 거침없이 부딪쳤던 모습이 그랬다. 하지만... 딱 그 때까지였다.

허지웅은 고재열이 트위터를 통해 병신짓을 한다고 질타하고 수시로 조롱했지만, 트위터로 인해 망가져간건 허지웅도

마찬가지였다. 고재열이 트위터를 너무나 과대평가했다면, 허지웅은 트위터를 감정의 배설구로 쓰레기통 다루듯 했다는

차이만 있을뿐. 괴물과 싸우면서 괴물이 되어간다는 전형적인 사례다.


허지웅이 가치를 가졌던건 블로그의 빛나는 글들 때문이었다. 생각을 벼리고 벼려 유려하게 풀어쓴 그 글들은 아주

날카롭게 읽는 이들의 폐부를 찔렀다. 나와 비슷한 연령대에 그런 글을 쓰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받은

충격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하지만... 허지웅이 트위터를 시작하고 소위 '싸지르는' 글을 배설하면서 그의 희소가치는

아주 깨끗하게 사라졌다. 왜? 그가 아무리 트위터에 촌철살인을 써도(촌철살인이라 보이는 글도 없지만서도) 그정도의

문장들은 다른 트위터에도 널리고 널렸으니까. 그가 트위터에 많은 말들을 쏟아낼 수록, 자신의 실체를 너무 초라하게

드러내어 슬펐다. 솔직한거라고? 아니. 솔직은 상대방의 고개를 끄덕이게 할 때 미덕을 갖는 것이다. 그는 그냥... 비루하다.


오늘 김어준을 질타하는 그의 트위터 문장들을 보면서 참 많이 서글펐다. 그가 김어준의 실체에 대해 어느정도까지 알고

있는지는 몰라도, 적어도 우리보다야 많은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트위터에서 우리는 김어준의 실체와

흠결을 찾기 힘들다. 그의 글처럼 김어준이 무협지형 인간이라 '나꼼수' 등으로 사람들을 현혹하고 교주처럼 행동해서?

그걸론 부족하다. 적어도 김어준을 까려면 현재의 열광 뒤에 가려진 김어준의 실체를 드러내주는게 순서다. 그런 전제없이

이렇게 까는건 그냥 열등감과 질투 그 이상도 이하로도 안보인다. '감히 광대같은 새끼가 나같은 논객보다 사람들에게

먹혀들다니!' ... 뭐 이런거. 김어준이 뭔가 대중들에게 구라를 치고 그를 통해 카타르시스를 주는 것일지도 모른다. 거기에

팩트의 왜곡이 있다면 그걸 짚어야지, 그에게 열광하는 사람들 욕은 왜 하는건가.


진중권처럼 곽노현 사태와 관련하여 김어준이 진영논리에 빠져있기 때문에 까는거라면 허지웅은 입을 다물어야 한다.

그 역시 진영논리에서 자유롭지 않기 때문이다. 신해철이 학원광고 찍었을 때 했던 일련의 발언들에 대해 언급하지 않은건

그렇다 치자.(사실 그 후에 신해철과 친분관계를 과시한걸 보면서 기가 막혔지만) 사회의 모든 사안에 대해 허지웅이 발언을

할 의무는 없으니까. 그러나... 나홍진 구타 사태 때 왜 당신은 입을 다물었는가? 명색이 영화평론가를 자처하는 사람이

'거기엔 그럴만한 사정이 있다' 며 눙치는 걸 보며, 그 때부터 참 실망스러웠다. 적어도... 허지웅은 진영논리 가지고 타인을

까면 안된다. 그건 오늘 그가 트위터에 올린 말 그대로 '그냥 병신' 임을 증명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허지웅은 망가졌다. 한 때 내가 참 좋아했던 글들을 쓴 사람이라는 점에서(그는 이런거 신경도 안쓴다고 하겠지만) 너무나

안타까운 일이지만 인정할건 인정하자. 기자'였고' 평론가'인' 사람이 글을 생산하지 않고 배설한다는건... 어떤 이유를 붙여도

그냥 자기 정체성 포기밖에는 안된다. 이젠 그의 블로그를 가도 별로 볼 것도 없지만... 언젠가는 그가 다시 자기 자리로 돌아

오기를 바란다. 힘겨운 처지에 있던 동년배들에게 무언가 위안이 되는 그런 존재였으니까. 적어도... 나에게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