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국민은 전쟁을 원하지 않는다. 그러나 결국에는 국가의 지도자들이 정책을 결정한다. 민주국가이든 파시스트 독재국가
이든, 의회국가이든 공산주의 독재국가이든 국민을 어떤 체제로든 끌어가는건 쉬운 일이다. 목소리를 내든 말든 국민을 지도자
들처럼 생각하도록 끌어갈 수 있고,그렇게 하기는 쉽다. 국민에게 우리가 공격받고 있고, 반전주의자들을 애국심이 부족하다고
비난하며, 그들이 조국을 위험에 빠뜨릴 거라고 말하면 충분하다. 이런 방법은 어떤 나라에서나 통한다.
-헤르만 괴링(뉘른베르크 전범 재판에서)
천안함 정국에서도, 연평도 포격 사태에서도 애국을 빙자한 '전쟁불사' 를 외치는 목소리는 드높았고, 평화와 반전을 이야기
하는 사람들은 매국노, 빨갱이로 몰렸던 사회적 공기를 기억한다면 위의 문장 속 내용은 낯설지 않을 것이다. 설령 상대가
아무리 후안무치의 악당이라도 싸우는 것보단 타협하는게 덜 위험하다는 손익계산마저 투지에 불탄 유사 애국자들에 의해
친북좌파로 매도 당하지 않았던가. 정작 전쟁을 외쳤던 이들은 안보 장사를 통해 배를 불리면서도 전쟁이 터지면 손에 총을
들 일이 없는 자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시대와 공간을 초월하여 전쟁과 애국이란 프레임을 선점하여 시민들을 선동하는 사이비 애국자들은 존재해왔다. 전쟁이 나면
얼마나 세상이 비참해질지에는 모르쇠로 일관한채 자신의 정치-사회적 입지를 위해 국민의 목숨을 담보로 도박을 하는 이들.
'분쟁' 을 '전쟁' 으로 확대하며 '국가' 와 '민족' 을 부르짖는 이들을 우리는 한번쯤 더 유심히 지켜보고 의심할 필요가 있다.
정작 일상에서 행할 수 있는 소소한 애국 따윈 구둣발로 즈려밟고 사는 이들일 가능성이 너무나 크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