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凝視

'어련히 잘하시겠지' 의 위험성

새정부 출범 100일이 훌쩍 지나고 대내외적으로 아주 민감한 이슈들이 발생하고 있지만,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은 흔들림이 없다. 항상 정권 지지도에 대한 위협이 되어왔던 북한이 단순히 핵미사일도 아닌 수소폭탄


실험씩이나 했다는데도 대통령에 대한 믿음이 흔들리지 않았다는건 그만큼 대통령을 위시한 지도부가 훌륭한


리더십을 펼쳐왔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그래서 흐뭇하다. 나 역시 그와 그들을 지지해온 사람 중 하나니까.


하지만 눈에 작은 먼지 알갱이가 들어가 눈을 비비게 되는 것처럼, 왠지 모를 불편함이 살짝살짝 느껴지기


시작한 것은 그저 걱정많은 소인배의 노파심일까.



누구나 실수를 한다. 국가 운영도 결국 사람들이 모여 논의하고 결정하는 일이니 역시 실수가 벌어질 수 있는


영역이다. 그래서 새정부 출범 후 약 4개월의 시간 동안 벌어진 논란들도 전 정권이 남긴 엄청난 쓰레기들을 


분리수거하고 새로운 체제를 구축하면서 나온 부차적인 실수들에서 기인했다고 본다. 박기영 처럼 누가 봐도


다시는 공적 영역에 발을 들이지 말아야 할 사람을 슬쩍 등용하려고 했던 점이나, 역사관 및 과학관 등에서


많은 논란의 여지가 존재하는 박성진 같은 이를 추천하고 있는 모습 등이 그렇다. 집권 세력의 입장에서는


무언가를 추진할 때 중심을 잡기 위해 여론에 흔들리지 않는다는 단호함을 보여줄 필요도 있다는 점에서


이런 논란들을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다만 내가 우려하는건, 이런 사안들에 대하여 '우리 문대통령이 어련히


알아서 하실까' 라는 태도로 일관하며 반대하는 이들을 적대시 하는 사람들의 모습이다.



요즘 몇몇 주요 sns 및 팟캐스트에서 적극적으로 현 정권을 옹호하고, 정권이 추진하는 일에 반대를 표명하는


이들에게 상상 이상으로 증오를 드러내는 사람들이 있다. 그 사람들은 탄핵 정국에서 구세력들에 대한 통렬한


비판으로 사람들에게 쾌감을 주고, 실제 정권 교체에 기여한 바가 분명히 있다. 그리고 그들이 우려하는 바가


어떤 것인지도 알 것 같다. 참여정부 시절, 악질 언론과 보수들에게 사정없이 얻어맞고 시종일관 흔들리다가


끝내 비극적으로 삶을 마무리해야 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전철을 다시 밟고 싶지 않다는 그 심정을 말이다.


그래서 정권 초기에 문재인 대통령이 하고자하는 바를 함께 지켜주지 않으면 언제 또 이명박이나 박근혜 같은


개새끼들에게 당할지 모른다는 그 공포심도 알겠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편이 아니면 적' 이란 선을 긋고


총을 겨누는게 과연 온당한 것일까.



난 지금도 참여정부 당시 한미 FTA를 강행했던 주역인 김현종을 다시 등용한 것이 타당한 것인지 이해하지 


못한다. 그게 타당하다면 지난 정권에서 FTA를 이유로 온갖 비난과 조롱을 당하다가 국회의원 선거 낙선까지 한 


김종훈이 너무 억울할 법 하다. 김종훈이 실무자였다면 김현종은 그를 지휘했던 컨트롤타워 아니었던가.


당시 독소조항이었던 ISD나 래칫 등이 전혀 해결된게 없는데, 예전까진 나빴던 한미 FTA가 문재인 정권이 되니


갑자기 좋아졌다는건 대체 어떻게 설득이 되어야 하는 것일까. 이런 것을 외면하고 '이명박의 FTA는 악이었고


노무현의 FTA는 선이었으며, 김현종은 노무현의 FTA를 담당했던 사람이니 괜찮다' 라고 한다면 그건 정말


전형적인 내로남불이라고 밖엔 설명이 안된다.


또한 지금의 사드 사태에 있어서도 전 정권의 사드 도입시 그토록 사드가 군사적 효용이 없고 중국을 적으로


만드는 것임을 인정하던 사람들이, 지금 정권에서 도입을 결정하고 추진하는 것에 대한 반대 여론에 대하여


현실을 모르는 자들의 무지이고 문대통령 발목을 잡으려 한다고 비난하는 모습을 어떻게 봐야 하는 것일까.


김종대, 김광진과 같은 사람들이 그간 사드에 대해 여러가지 좋은 의견을 내놓았던 것은 아랑곳하지 않고,


지금 문재인 정권이 추진하는 사드 포대 배치를 반대하니 나쁜 새끼들이라고 하는게 말이 되는가.



성주 주민들의 좌절을 보면서 과거 노무현 정권 시절 평택 대추리 주민들의 모습이 떠오른건 너무 과한 것일까.


예전에는 폭력이고 무도한 일이었던 것들이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면 과감하고 현실적인 결단이라고 추앙하는


것은 결코 그들이 존경하는 문대통령을 위하는게 아닐 것이다. 참고로 노무현 정부가 지지세력을 잃었던 것은


대연정이나 한미FTA 도입과 같은 거시적 이슈였다기 보단, 대추리에서의 행정대집행에서 주민들이 폭력을


당하던 모습과 같은 장면에서 비롯되지 않았던가.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당했다는 느낌만큼 사람들의 마음을


돌아서게 하는게 없다는 것은 참여정부 당시의 실패가 우리에게 주는 역사적 교훈이 아니었던가. 그래서 걱정이


된다. 문재인 대통령이 하는게 다 옳다고 믿는 사람들이 배신감을 느끼는 그 지점이 올지도 모른다는 그런 걱정.



난 지금 문재인 지킴이를 자처하며 현 정부 정책에 반대하는 이들에게 살벌한 비난을 날리는 사람들이 이젠 좀


진정했으면 좋겠다. 지금 국민들은 참여정부 때처럼 허망하게 지도자를 잃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수많은


정보의 창구가 존재하고, 각종 수단을 통해 활발하게 의견 교환을 하면서 기존 언론 기득권을 인정하지 않는


스마트한 사람들이 있었기에 탄핵도 가능했던 것이 아니던가. '내 편이 아니면 적' 이고 '우리 이니님이 하는데


어련히 잘할까' 라는 태도는 결국 그들이 존경해 마지않는 그 이니님이 조금씩 고립되는 이유가 될지도 모른다.


우리가 문재인 대통령이 끝까지 안정적으로 정국을 이끌어가도록 돕는 길은 그가 무얼 하든 '어련히 잘하시겠지' 란


맹목적 믿음을 날리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 실수가 있을 때 '그건 좀 아니지 않나' 라고 문제제기를 하는 그런 엄정한


눈빛일 것이다. 방향타가 0.1도만 기울어도 나중엔 영 엉뚱한 길로 가는 것처럼, 현 정부가 처음부터 방향타를 바로


잡고 갈 수 있도록 조금 더 객관적 시각으로 바라보았으면 좋겠다. 그가 집권 시작과 끝을 성공적으로 마무리 한


대통령으로 역사에 남을 수 있도록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