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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y by day

사라지지 말아요...


# 검도부 창립전이 있었다. 생각보다 많은 OB들이 왔고, 그 때 그 시절 멤버들이 오랜만에 모였다는 유쾌함 때문이었을까...


다들 자기 나이 생각은 하지 않고 정말 열심히 뛰었다. 예전 날카롭던 칼놀림은 온데간데 없고, 다들 뭉툭하고 둔탁한 움직임을


보이긴 했지만... 그래도 좋았다. 새내기 때 그렇게 무섭고 어려웠던 선배들과 이제는 스스럼없이 힘들어 죽겠다는 농담도 


해가며 땀에 흠뻑 절어 운동을 할 수 있다는게. 그렇게 즐거우면서도 힘들어 허덕대던 두어시간을 보낸 뒤... 그 다음날부터 


지금까지 팔을 들기가 힘들 정도로... 누군가 온몸을 때리고 밟은 것 같은 욱씬거림에 괴로워하는 중이다.



# 1999년부터 검도부 생활을 시작했으니 벌써 16년째다. 검도를 업으로 삼을 생각도 없었으면서 왜 그토록 미련하게 운동에


매달렸을까. 숨이 꼴깍 넘어가기 직전에 운동이 끝나면, '다시는 안와야지' 라고 다짐했다가도 다음날 슬그머니 연습실 문을


열고 청소하고 몸을 풀었던 날들이 쌓여서 어느덧 선배 노릇도 하고, 시합도 나가고, 그러다가 졸업을 하고... 그렇게 보낸


대학 생활이 정말 좋았다. 농담처럼 다시 태어나면 검도부 안하고 여자 많은 합창동아리 갈꺼라고 했지만, 이정도로 추억과


사람을 남겨준 곳이 또 있었을까. 그래서 OB가 된 지금도 학생회관 7층을 걸어올라가는 길이 힘들지가 않았다.



# 그렇게 나에게... 그리고 동기와 선후배들에게 특별한 공간이었던 검도부가 이제 존폐의 위기에 있다고 한다. 내년이면


남아있을 YB들이 있을지 모르겠다는 후배들의 말을 들으며 선배들은 잠시 말을 잃었다. 취업이 점점 힘들어지고, 학비를


대기도 벅찬 학생들이 자기 스펙에 큰 도움이 되지도 않을 검도부에 가입해서 힘든 운동을 견디고 시간을 투자할 것이라


기대하기는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나 역시도 4학년이 되어서는 죽도를 잡을 여유가 없었으니까. 하지만... 33년을 이어온


하나의 공동체가... 누군가에게는 대학생활의 전부나 다름없었던 공간이 이렇게 사그라진다는 것이 그저 슬프다는 말로는


표현이 안될 정도로 상실감이 컸다. 이렇게 된게 자기들 잘못인양 어깨를 늘어뜨리는 후배들을 도울 수 없다는 선배들의 


미안함을 어떻게 표현할지 몰라 더 미안했다. 그래서... 이번 창립전은 참 기쁘면서도 서글펐던 한바탕 잔치였다.



# 어떻게든 다시 살아나겠지...라는 무책임한 희망이 우리가 택할 수 있는 유일한 위안이지만... 강산이 세번 변할 시간동안


이어져 온, 그래서 우리의 삶의 큰 귀퉁이를 차지해 온 이 동아리가 사라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누군가는 나처럼... 힘들고


괴로운 순간을 미친듯이 기부림 넣고 죽도를 휘두르며 떨쳐버린 후 기분좋게 맥주를 마셨던 추억을 간직했으면 좋겠다.


그 때 내 곁을 지켜준 사람들과 함께 인생의 길을 격려하며 갈 수 있는 행복함도 더불어 느끼길 바라며. 그리고 검도부 뿐만


아니라, 학생들이 질식하지 않게 숨구멍이 되어준... 스펙엔 전혀 쓸모가 없는 다른 동아리들도... 꼭 살아 남아주길 바란다. 


디어클라우드의 노래 제목처럼... 사라지지 말아요.





이것도 벌써 3년전의 장면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