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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교동 살이

제니스카페... 문을 닫다.


서교동에 Jenny's cafe라는 곳이 '있었다'. 주변 카페 거리의 수많은 집들이 문을 열고 닫는 와중에도, 찾는 사람들이 많아 


나름 꿋꿋하게 버티던 맛집이었다. 와이프와 연애 시절, 빗속을 뚫고 찾아가 먹었던 뇨끼가 정말 맛있었던... 그런 기억이


남아있는 곳이기도 하다. 그 후 이 동네에 이사와서도 친구들이 찾아오면 종종 데리고 가서 '우리 이런데 자주 와~' 라는 듯


은근 우쭐대기도 했더랬다. 종업원들이 조금 무뚝뚝한게 유일한 불만이었지만, 그래도 음식맛 만큼은 참 깔끔했던 식당


이었는데... 어느날 창문에 이런 전단이 붙었다.





건물주의 가족이 들어오기로 했으니 이제 비워야 한다는 내용의 글이었다. 


그 이후 제니스카페 측에서 버틸 수 있을만큼 버텨보겠다고 했다는 이야기를 어느 기사에서 보고 부디 잘 되었으면... 하는


마음을 가졌다가 이내 잊고 지냈는데, 오늘 점심을 먹으러 가는길에 마주한 살풍경에 가슴이 싸해졌다.


(기사 : http://www.hani.co.kr/arti/economy/economy_general/677974.html?_ns=c1)





합정동, 서교동 일대에서 밀려나는 다른 가게와 하나도 다를바 없는 같은 패턴의 폐업이었다. 이 곳이 그리 흥하지 않던 시절엔


그저 임대료 꼬박꼬박 잘 받을 수 있으면 만족해했던 건물주들이 어느날부터 동네가 북적이고 제 건물에 입주해있던 가게의


영업이 잘되는 걸 보면서, 이상한 생각을 하기 시작한다. 주로 '임대료를 올려 받아야겠군' 이거나 '저걸 내가 해보면 어떨까' 


따위의 그런 발상들. 어떤 경우든 결론은 입주해있던 가게는 동네를 떠나야 한다는 것. 그렇게 작지만 실력과 매력이 있던


가게들은 하나하나 떠나고, 그 자리엔 돈으로 쳐발랐음이 분명한데도 싼티나는 매장들이 들어선다. 그리고... 그런 곳들은 


십중팔구 견디지 못하고 다시 문을 닫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제니스카페가 있던 곳도... 그리 다르지 않을건 자명하다. 



물론 건물주가 계약에 따라 자신의 소유권을 행사하는 것은 비난받을 일이 아닐지 모른다. 하지만 월세를 몇 % 수준이 아닌


배수의 단위로 올리며 입주자에게 '돈없으면 꺼지던가' 라는 식의 권리행사는 그리 인간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그간 월세를


꼬박꼬박 내며 자신의 소득에 일조해오던 이들에 대한 예의도 아니다.(하긴 이런 이들에게 무슨놈의 예의를 바란단 말인가)


그리고... 이는 어쩌면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른 동화속 얼간이의 비극으로 현실화 될 가능성도 높다. 당장 눈 앞의


이익에 눈이 멀어 더 큰 것을 잃고 마는 그런 바보같은 이야기. 이는 이 일대에서 무섭게 갈아치워지는 가게 간판들의 모습을 


지켜본 사람이라면 결코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제 우리가 알던 제니스카페는 합정에 없다. 앞으로 더 많은 사람들이 눈물을 머금고 쓸쓸히 떠나갈 것이다. 그리고 머지않은


미래에 이 거리도 지금의 신촌처럼 번잡하면서도 황폐한, 싸구려 취향이 넘쳐나는 그렇고 그런 곳이 되겠지. 봄이 오고 있는데


이 동네를 둘러싼 공기는 점점 스산해져만 간다...





잘가요 제니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