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text/밑줄긋다

「미움받을 용기」(by 기시미 이치로, 고가 후미타케)





우리는 좀 더 '지금,여기' 를 진지하게 살아야 하네. 과거가 보이는 것 같고, 미래가 예측되는듯한 기분이 드는것은 자네가 


'지금,여기' 를 진지하게 살고있지 않고 희미한 빛 속에서 살고 있다는 증거일세. 인생은 찰나의 연속이며, 과거도 미래도 


존재하지 않아. 자네는 과거와 미래를 봄으로써 스스로에게 면죄부를 주려하고 있네. 과거에 어떤 일이 있었든지간에


자네의 '지금, 여기' 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고, 미래가 어떻게 되든간에 '지금, 여기' 에서 생각할 문제는 아니지.(308p)



# 사진 속 저 못난 글씨는 아마도... 2003년이나 2004년쯤 독서대에 썼던 글귀였을거다. 하면 될꺼라는 막연한 기대감에 


한껏 부풀어 학교 도서관 책상에 웅크려앉아 나름 또박또박 썼던 기억이 나는데(그러고보면 정말 악필이다) 결국 난 PD가 


되지 못했고, 1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쓰고있는 독서대에서 저 글자들을 보며 이따금 가슴이 싸해지는건, 아마 아직도 


내가 과거에서 완전히 벗어난 것이 아니라는 방증이리라.



# 꿈을 이루지 못한 삶은 실패한 삶일까. 이 질문은 내가 최종적으로 방송사 시험에 대한 미련을 접고 회사에 입사했을 때부터


지금까지도 날 괴롭혀왔다. 오르지 못한 고지, 가지 못한 길에 대한 미련은 차치하고서라도 확실한 것은, 꿈을 좇았던 나의


과거가... 열정이라 자부했던 그 시간이 지금 현재를 충실하게 살지 못하게 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는 점이다. '내가 여기 있을


사람이 아닌데...', '내 적성은 이게 아닌데...' 로 점철되어 왔던 시간이 어느덧 6년을 훌쩍 넘겨버렸다. 그 시간동안... 난 대체


무엇을 하고 살았던 것일까.



# 그래서 저 위에 인용한 문장에 가슴이 아팠다. 현재에 게으른 나에게 과거를 핑계로 끊임없이 면죄부를 주고 있는 못난


내가 보였기 때문이다. 과거에 무언가 되고 싶어서 열심히 했는데... 그게 뭐 어쨌다는 것인가. 지금을 즐기지 못한채 매일


한숨만 쉬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것이 중요한 것인데 말이다.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소위 '꿈' 이라는 것을 이룬 뒤


하루하루를 보람차게 보내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그 외 나머지 사람들은 다 절망과 회한 속에 그저 그런 삶을 살고


있던가. 그게 아니란 것을 아니까... 나름 다른 길을 뚫어내고 재미있는 것을 찾아내며 사는 사람들이 많은데 나는 그러려는


의지도 없이 그냥 백일몽만 꾸고 있다는걸 아니까 괴롭고 힘든거다.



가령 자네가 산 정상에 오르지 못한다면 자네의 삶은 어떻게 되는건가? 사고나 병이 나서 오르지 못할 수도 있고, 등산


자체가 실패로 끝날 가능성도 있지 않나? '길 위' 에 있는 채로, '가짜인 나' 인채로, 그리고 '가짜 인생' 인 채로 인생이


중단되는거지. 그러면 그 삶은 도대체 뭐란 말인가?(300p)



# 내가 그토록 갈구하던 꿈을 이루었다고 진짜 인생이고, 지금 사는 삶은 가짜 인생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현재의 


생활에도 분명히 의미있고 지키고 싶은 것들이 많으니까. 하지만...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이 정말 내가 앞으로 계속해서


몸담고 있어야 하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이고, 더 솔직히 말하면 비관적이다. 이 책에서 말하는 자기수용과


타자신뢰, 그리고 타자공헌에서 다시 자기수용으로 이어지는 순환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을 것 같기 때문이다. 꼭 지금의


직장생활을 이 책의 메시지에 대입하진 않더라도... 지금의 삶이 온전히 진짜는 아닐 듯 하다는 것... 그게 문제다.



# 저 사진속에 쓰여졌던 바램대로 내가 저 방송국에서 원하던 일을 하게 되었더라도... 그 이후 그 곳에서 벌어진 온갖 말도 


안되는 일들의 연속 안에서 수없이 괴로워 했을테고 어떤 선택을 했을지는 정말 어느 누구도 모르는 일이겠지만... 그래도


한 번 사는 삶이라면 모가 됐든 도가 됐든 혼신을 다해 하고픈 일을 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라는 미련은 징글징글하게


떨어지지 않는다. 



# 정말 부끄럽기 짝이 없는 저 사진속 유치한 글귀를 이렇게 올리는건... 추억이라 미화하기엔 그 유효기간이 훌쩍 지나


눅눅해져버린 기억들을 어딘가 좀 묻어버려야겠다는 일종의 다짐이다. 그 기억들이 오늘을 사는데 자꾸만 발목을 잡고


있으니까. 이젠 그냥... 현재를 재미있게 즐기고 만족할 줄 아는 그런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그런 다짐. 그리고 이제부터는


더 나은 삶이 무엇인지를 고민해야 할... 그런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