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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xt/밑줄긋다

「100℃」(by 최규석)


물은 100도씨가 되면 끓는다네. 그래서 온도계를 넣어보면 불을 얼마나 더 때야 할지, 언제쯤 끓을지 알 수가 있지.

하지만 사람의 온도는 잴 수가 없어. 지금 몇도인지, 얼마나 더 불을 때야 하는지, 그래서 불을 때다가 지레 겁을

먹기도 하고 원래 안 끓는거야 하며 포기를 하지. 하지만 사람도 100도씨가 되면 분명히 끓어. 그것은 역사가

증명하고 있네... 나라고 왜 흔들리지 않았겠나. 다만 그럴 때마다 지금이 99도다... 그렇게 믿어야지. 99도에서

그만두면 너무 아깝잖아. (92p) 



사람들의 마음에도 끓는점이 있다면, 그래서 마음의 온도가 100도씨가 넘었을 때 무언가 폭발이 일어나는 것이 맞는건데...

사랑의 온도가 100도씨를 넘으면 고백을 하거나 손을 잡을테고, 미움의 온도가 100도씨를 넘으면 욕을 하거나 따귀를 한대

날릴테고, 슬픔의 온도가 100도씨를 넘으면 눈물을 펑펑 흘리거나 가슴을 쥐어 뜯는게 정상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정말

사람이 미쳐버릴지도 모르니까. 그런데 이상하게 지금 우리는 마음의 끓는점을 잃어버리고, 그저 한없이 달아오르기만 하는

그런 느낌이다.


군중이 지닌 마음이 끓는점을 넘었을 때, 그 때 사회에는 큰 변화가 일어난다. 전태일 열사가 몸에 불을 붙였을 때, 김주열

열사와 이한열 열사가 최루탄을 맞고 사망했을 때 지펴진 마음속 군불들이 동시대 사람들의 분노를 끓게 하였고, 그 결과가

4.19 혁명 및 6월 항쟁, 그리고 노동운동의 촉발이 아니었던가. 위에 인용한 만화「100℃」속 문장 역시, 역사가 보여주었던

마음속 끓는점에 대한 믿음에서 비롯되었을게다. 그런데 참으로 이상한 것은... 지금 상황은 이미 100도씨가 되었음에도 물이

끓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국가가 물에 빠진 사람들을 구조하지 않아 295명이 죽고 9명이 실종되었는데도, 자동차 회사가 사람들을 대량해고하여 그로

인해 25명의 해고자와 가족이 목숨을 잃었는데도 국가는 그게 정당한 것이었다고 판결을 내렸는데 사람들이 그닥 화를 내지

않는다. 국정원이 댓글을 달아가며 선거에 개입하고 무고한 사람을 간첩으로 만들어 희생양을 삼아도, 학생들에 대한 무상

급식에 사사건건 딴지를 거는 국가가 22조라는 돈을 강물 오염시키는데 들이부어도 그냥 무심한 시선으로 바라만 본다.

분명히 불은 활활 타오르고 물을 덥히고 있는데, 정작 끓을 생각이 없는 물을 보는 그런 기분.


물에 소금을 타면 끓는점이 올라간다고 배웠는데... 지금이 바로 그런 것일까. 사람들의 가슴속에 고여 있는 맑은 물들에

나만 아니면 된다는 이기심, 일단 먹고 살아야 한다는 먹고사니즘, 화내봐야 소용있겠냐는 체념과 패배주의... 이런 것들이

소금이 되어 녹아들어 끓는점을 높인 것은 아닐까. 그래서... 분명 100도씨가 넘었는데도 끓지않고 김만 피우다가 결국

식어버리는 것으로 끝이 나지 않을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런 바보같은 생각들마저 점점 하기 귀찮아질까봐... 그게 더

두려운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