思眞/길에서 만나다

고양이 소야곡

yanggang 2013. 3. 1. 23:58


'어흥~'


정말 오랜만에 안국동에 사진 산책을 나왔다. 하지만... 느릿느릿 걸으며 셔터를 누르기엔 춥고 바람이 많이 불던 오후... 

'에이... 저 골목만 갔다가 어디 들어가서 커피나 마셔야겠다...' 라고 궁시렁거리며 들어선 골목에서 이 녀석과 눈이

마주쳤다.




'자네 지금... 날 보고 있는겐가?'


여느 고양이와 마찬가지로... 눈 한번 마주쳐주고 도도하게 지나치리라는 내 짐작과는 달리 이 녀석... 갑자기 내 앞에 슬며시

주저앉는다. 



'사진 찍으러 왔는가? 너 같이 어리버리한 놈들 많이 봤어. 자네 오늘 운이 좋군.'


.... 이라는 표정으로 날 보던 녀석은



졸다가...



'아니야! 무슨 소리! 난 졸지 않았어!!!'


...라는 듯 화들짝 일어나더니만 갑자기 창문으로 훌쩍 뛰어가더니



잔다...
 



'아이구~ 삭신이...'



'저리 가~ 너랑 놀아주기 귀찮아졌어.'


... 이렇게 드러눕고는 이내 잠이 들어버렸다.



왠지 다시는 나따위 관심 가져주지 않을 듯하여 다른 골목 여기저기를 30분 정도 어슬렁거리다 다시 그 자리로 돌아와보니...

...

아직 그 자리에 계셨다.



'음~ 오늘 볕이 좋군'


그런데 생각해보니 이상하게도 이 녀석... 이 자리를 떠나질 않는다. 다른 고양이들 같으면 이미 훌쩍 떠나고도 남았을만한

시간 동안. 행여나 하는 마음에 '이쪽으로 오시겠습니까?' 여쭈어보니...




'나쁜 사람~ 왜 이제야 불러주는거니~'


... 왔다. 와서 한참을 내 장갑에 얼굴을 부비고 깨물고 가르릉거리며 떠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내 뒤를 지나가는 사람들이

"어머~ 저거봐~", "완전 신기해~", "주인인가?" ... 머 이런 탄성을 남기며 구경을 하는 동안에도, 이 녀석... 떠날 생각을 하지

않는다. 아마도... 외로웠나보다... 정말로... 


그렇게 한참을 부비적거리다 불현듯 몸을 곧추세운 녀석은



'나 이제 가네...'


... 골목 어귀로 사박사박 걸어갔다. 급한 기색 하나 없이... 언제 내 장갑에 얼굴을 묻었냐는 듯, 전혀 아무일 없었다는 듯

우아한 걸음으로 그렇게.


고양이 카페에 있는 고양이들도 사람 옆에 10초를 같이 못있는데, 길고양이와 거의 30분을 함께한 것은 참 경이로웠다.

<쿠루네코> 같은 만화책이나 여러 인터넷 웹툰을 통해 간접적으로 접했던 사랑스러운 집고양이도 아닌, 헐어있는 왼쪽귀가

안쓰러워 보이던 그 녀석. 집에 가는 지하철에서 오늘 찍은 사진들을 보다가... 이 한장의 사진에 마음이 살짝 짠해져 한참을

바라봤더랬다. 꽃샘추위라는데... 춥지 않게 잘 자라.

...



'가지 않으면 안되겠는가?'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