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mm...樂

동거 (by 가을방학)

yanggang 2010. 11. 27. 22:41


고백할게요 나 거리에서 당신을 지나친 적 있어요

같이 살면서 같이 지내면서 못 본 척 지나친 적 있어요

우편함이 꽉 차 있는걸 봐도 그냥 난 지나쳐 가곤 해요

냉장고가 텅 비어 있더라도 그냥 난 못 본 척 하곤 해요

나는 부모님과 사니까요

- 가을방학, <동거>


31년째 부모님과 동거를 하면서 그들에 대해 많은 심경의 변화를 겪었다. 유년기에는 포근함을, 10대에는 원망을, 20대에는

죄책감을 그리고 지금은 연민과 미안함을... 살가운 아들이 아닌지라 늘 무뚝뚝한 모습만 보였지만 사실 두분과 함께 살지

않는 집을 상상해본 적도 없다. 실제로 어린 시절 동네에서 아버지를 보고도 슬쩍 지나친 적도 있고, 요즘도 우편함이나 음식물

쓰레기통이 차있어도 슥~ 지나가곤 한다. 당연히 엄마가 하겠지, 아빠가 하겠지... 그렇게 신세를 지면서 살고 있으면서도

그게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모르고 사는게 문제다. 나이 서른 하나에 부모님한테 얹혀살고 있으면 좀 잘해야 하는데 말이지.

나이가 들었어도 어찌된 것인지 좀체 마음은 자라지가 않는다.


노래 제목만 보면 뭔가 젊은 남녀간의 농밀한 무언가를 상상할 수 있겠으나... 이렇게 몽글몽글한 멜로디에 부모님에 대한

살가움과 애틋함을 가사에 담고 있는 반전이 기다리는 노래. 그룹 이름이 말해주듯 앨범 속 노래들은 시종 밝고 맑지만

그게 유치하다거나 오글거린다고 느껴지지 않는건 두말할 것도 없이 계피의 목소리 때문. 브로콜리너마저에겐 참 안타까운

일일지 몰라도, 브로콜리2집보다 이 앨범에서 브로콜리 1집에서의 재기발랄함이 느껴지는 것도 결국엔 계피의 존재 유무에

따른 차이일지도.


혹시라도... 부모님에 대한 심경이 복잡한 사람이 있다면, 이 노래가 감정의 환기에 아주 큰 도움이 될 것이라 믿음.


ps. 사진 속 주인공은 나의 탄생 때부터 동거를 시작한 차여사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