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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우스 푸어> (by 김재영)
yanggang
2010. 9. 6. 00:20
"덮어놓고 사다보면 거지꼴을 못면한다"
담배를 피우던 사람이 폐암에 걸렸다. 살아가면서 자신을 짓누르는 스트레스를 잠시나마 잊기 위해 입에 물었던 담배가
가져온 가혹한 참상. 근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억울하다 싶어 담배회사에 소송을 건다. 니들이 담배 만들어 파니까
내가 사서 피우다 암에 걸렸지!!! 이러한 문제 제기가 옳은 것인지에 대해서는 저마다 생각이 다르겠지만, 자신의 '선택'에
의해 벌어진 일임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우스 푸어에 관한 이야기들을 읽으며 문득 담배 소송 생각이 났다. 집을 마련하기 위해 자신의 벌이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어마어마한 액수의 돈을 빌렸다. 그것이 시세 차익을 위한 투기의 목적이든, 아니면 정말 여우같은 아내와 토끼같은
자식들과 오손도손 살기 위한 소박한 꿈이든, 결국 자신의 선택에 의해 이루어진 일이라는 것은 변함이 없다. 그들의
기대와 달리 집값은 오르지 않고, 빌린 돈에 대한 이자와 상환 기일은 무시무시한 압박으로 목을 조여오고... 사는게 지옥인
나날들이 펼쳐진 그들을 우리 사회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것일까.
어떤 일이 벌어질 땐 반드시 동전의 양면과 같은 반응이 존재한다. 우산장수 아들과 모자장수 아들을 둔 어머니의 이야기처럼.
집값이 떨어지면 그동안 집을 못구해 힘겨워하던 사람들에겐 너무나 반가운 일이지만, 빚내서 집을 산 사람들에겐 그야말로
재앙의 시작이 된다. 버블이 꺼지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필연적인 피해자들의 모습이 안타깝지만, 버블로 인해 집을 구하지
못해 고통받았던 사람들을 생각한다면 마냥 그들을 가여워 할 수도 없는 노릇. 이렇듯 부동산은 우리 사회 구성원들을 아주
깨끗하게 양분화시켜 놓았다.
부동산 문제로 인한 피해를 최소화 시키는 것이 나라가 해야 할 일인데, 이번에 공표된 8.29 부동산 대책을 보면 정부의 그럴
의지는 보이지 않고, 오히려 더 빚내서 집을 사라는 부채질만 보인다. 그렇게 폭탄이 터지는 시간을 늦추면 자신들의 책임은
없다고 믿는 것인지. 가계부채를 시급히 줄일 수 있도록 정교한 정책을 마련해야 하는 국가가 되려 국민들에게 빚을 더 내라고
조장하며 그들을 수렁으로 몰아넣는 상황에서, 앞으로 하우스 푸어와 같은 희생양들이 얼마나 더 나와야 하는 것일까.
세상을 알아 갈수록 모든 문제가 단순하지 않고, 그에 대한 해결엔 더 많은 실타래가 얽혀있다는 것을 목격한다. 내가 그런
상황이 되었을 때를 가정하면 몸서리가 쳐질 때도 있고. 내 벌이에 맞는 공간, 나와 함께 사는 사람들이 그저 편히 쉴 정도의
그런 공간이라면 원룸인들 어떻고 월세면 어떤지. '니가 세상 물정을 몰라서 그래' 라는 면박을 듣는다고 해도, 난 그냥
그렇게 살고 싶어. 내 즐거운 삶에 사용될 돈을 빚 갚는데 쓰는 그런 인생은 생각만 해도 숨이 막히니까.
꼭 당신이 사는 곳이 당신을 말해주는 것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