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교동 살이

destruction

yanggang 2016. 3. 5. 10:19





동네에서 이런 파괴의 현장과 대면하는 것은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닌 그저 일상이다.


소소해서 매력이 넘쳤던 동네 생태계를 파괴하고서는, 매끈하고 잘빠진 건물과 가게를 그 자리에 들이는 일이


제 살을 깎아먹는 것도 모자라 동네를 휘황찬란한 사막으로 만들어버린다는 것을 저들은 모른다.


당장 빈 가게가 흉물스럽게 넘쳐나는 이대 앞과, 너무 번잡해서 어디로 발을 옮길지 망설여지는 신촌의 선례는


그저 당장의 이익만 날 수 있다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저들의 안중에는 없는 일들이다.



이 파괴의 과정에서 눈물을 머금고 밀려난 사람들, 그리고 새로 생긴 건물에 자리 잡았다가 같은 과정으로


쫓겨날 사람들, 그 자리에 또 다시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들어올 사람들... 이 잔인한 악순환 속에서 사람들은


상처받고, 동네는 망가지고... 하지만 그 아수라장에서 이득을 보는 사람들은 웃으며 이 곳을 떠나겠지.


나 역시 언젠간 이 동네를 떠날 사람 중에 하나겠지만... 결혼 전 와이프와 이 동네를 오가며 이런데서 살면


정말 재미있는 일상이 있을 거라고 설레던 기억, 골목골목을 오가며 발견한 작은 상점들을 보며 보물찾기 하듯


즐거워했던 모습들이 한순간에 증발해버리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 굳이 1988년에 대해 응답하라며 추억을


되새길게 아니다. 당장 2~3년전의 장면들도 이렇게 흔적없이 사라지고 마는 것을.



참고로 저 사진 속 부서진 건물은 음식이 아주 깔끔하고 맛있었던 '미로식당' 이 있던 곳이다. 이제 합정을 찾는


사람들은 미로식당의 석쇠불고기와 해물부추전을 맛볼 수 없게 되었다. 이게 대체 뭐란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