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xt/밑줄긋다

「모든 요일의 기록」中 (by 김민철)

yanggang 2015. 9. 29. 23:42

나는 지중해로 떠나버린 나의 그 만약을 알지 못한다. 좋았을 것이라고, 상상보다 더 행복했을 것이라고, 다만 짐작할


뿐이다. 거기에 다녀온 나도 꽤 괜찮았을 것이라고 믿어볼 뿐이다. 그리고 지금의 나도, 그 모든 선택의 결과물인 나도


꽤 괜찮다고 생각한다. 결국 지금의 나를 만든 것은 그 선택들이니까.(91~92p)



지금의 직업을 갖기 전... 인생의 항로를 바꿀 기회가 딱 한 번 있었다. 놓자니 그동안 꼭 쥐고 있던 목표가 너무 아까웠고,


잡자니 포기해야 할 것들이 너무 많았다. 지금의 나였더라면 하지 않았을 선택을 그 땐 참 과감히도 해버렸고, 그 선택의


결과가 바로 지금이다. 역사에서와 마찬가지로 인생에서도 '만약' 이란 가정법은 의미가 없는 것이지만, 그래도 문득문득 


떠오르는 궁금증은 어쩔 수 없다. 그 때 그걸 잡았더라면... 지금의 내 삶은 어떤 모양새를 하고 있을까.



매몰비용으로 간주하고 잊어야 할 것들을 기회비용으로 여길 때 인생의 회로가 꼬이고 만다. 과거는 그 자체로 이미 유효


기간이 끝나 없어져 버린 것들이다. 지금까지 들인 시간이 아까워서, 노력이 눈물겨워서 바짓가랑이를 잡아봐야 소용이 없다는


말이다. 그건 그저 기억 또는 추억의 영역에서 다루어져야 할 성격의 것이지, 그것으로 무언가를 다시 도모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것을 마치 지금의 생활을 포기하면 다시 찾을 수 있는 무언가로 생각하는 순간 혼란이 시작된다. 시간이라는 놈이


마치 곰팡이처럼 나도, 꿈도 모두 변질시켜 놓았는데 뭘 어떻게 다시 찾을 수 있을까.



지난 시절의 선택에 후회가 없을 수는 없겠지만, 지금의 내가 최악이 아니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무언가를 모색하고 찾는


방법 밖에는 없을 것 같다. 서른의 중반을 훌쩍 넘어, 예전엔 전혀 염두에 두지 않았던 나이로 이동하고 있는 상황에서 그것


말고 어떤 것이 있단 말인가. 연휴의 KTX 안에서 수면 대신 생각이란 것을 하게 해 준 카피라이터의 이 책 한 권이 다시금


내 생활을 돌아보게 해주었다. 인생에서 책이란게 참 중요한 이유가 분명히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