凝視
있다 없으니까...
yanggang
2014. 11. 9. 23:46
한 걸그룹의 노래인 '있다 없으니까' 는 내가 아는 한 세상에서 가장 슬픈 제목이다. 그토록 사랑했던 연인이 내 옆에 있다
없어지면... 내 삶을 평생 함께 할 줄 알았던 배우자가 있다 없어지면... 피와 정을 나눈 부모와 자식 중 어느 한쪽이 있다
없어지면... 그보다 더 참담한 일이 있을까. 항상 있던 그 사람이 없고 그 자리에 나만 있는 풍경은 생각만해도 눈물이
차오르는... 그런 장면이다. 올해 유난히 사람들의 마음을 울리는 그런 일들이 많았고, 이번에 우리는 또 한 사람을 떠나
보내야 했다.
많이 살진 않았지만 그 와중에도 참 많은 가수들이 세상을 떠났다. 그럴 때마다 새삼스럽게, 마치 항상 그 사람을 마음에
두고 지내왔던양 우울해하고 공연히 그들이 남긴 음악들을 들으며 청승을 떨었다. 그들의 노래에 내 인생의 한 부분이
녹아들어 있다는 듯, 그 가수에 대해 참 많이 알고 그의 음악세계를 깊이 이해했다는 양... 못난 허세를 부렸다. 그런데...
도저히 신해철이 남기고 간 노래들은 내 손으로 틀지도, 듣지도 못하겠다. 평소에 그렇게 욕해 마지않던... 이제 음악에
대한 감각도 한물 갔다고 비난하던... 그의 노래를 이제와서 갑자기 새삼스레 틀고 들어버리면, 정말 그가 떠났다는 것을
인정해버리는 것 같아서... 겁이 나서 그런 것 같다.
인간이란게 간사해서 진짜 나쁜 사람에게보다는, 원래 좋아했지만 어떤 이유로 멀어진 사람에게 더 가혹하고 잔인해지는
법이다. 그건 뭐랄까... 믿었던 사람이 내게 준 실망감에 대한 분노가 증폭되는 탓도 있지만 그보다 더 큰 이유는 저 사람
이라면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욕해도 용인해줄 것이라는 일말의 믿음이 있기 때문일게다. 적어도 나에겐 그랬다. 그동안
그렇게 신해철이란 사람의 일련의 행보를 비난해 마지않았던 것도... 음악이 예전보다 형편없다며 조롱했던 것도...
그는 나라는 사람을 전혀 알지도 못했을 것이고 나같은 사람이 자신을 좋아하든 싫어하든 신경도 쓰지 않았을 것을 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죽음에 이르는 그 길에 솜털만한 무언가라도 얹은 것 같은 그 부채감은 어이 해야 할까.
내 CD장에는 내 군시절과 백수시절을 버티게 해주었던 'Hope' 도, 죽음이라는게 생각보다 참 가까운 곳에 존재한다는 것을
느끼게 해주었던 '날아라 병아리' 도, 생활하는 것 자체가 한편의 시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해 준 '일상으로의 초대' 도,
꿈을 꾼다는 것이 '세상의 바다를 건너 욕망의 산을 넘는' 고단한 여정이라는 것을 어린 내게 말해준 'The Dreamer' 도 모두
그대로 있는데... 이젠 정작 그 노래를 만들고 불러준 그 사람이 없다. 그게 새삼스레 느껴질 때마다, 그리고 문득 라디오에서
TV에서 흘러나오는 그의 목소리가 들릴 때마다 주책없이 자꾸 눈물이 난다. 그의 노래로 채워졌던 내 유년기와 청소년기가
송두리째 증발해버린 듯한 상실감 때문만은 아니다. 힘겨워하는 사춘기 소년소녀와 청춘들의 가슴을 노래와 언어로 뜨겁게
만들었던 그 사람의 부재에 대해 도무지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누군가가, 그것도 사람들에게 알게 모르게 큰 버팀목이 되어주었던 그 누군가가 있다 없다는 것... 참 힘든 일이다.